한국의 미술평론 (2005) 잡[다한]글

1. 평론계의 상황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이 걸어온 궤적을 뒤돌아보면, 새로운 미술활동의 융기가 있을 때마다 이론과 평론의 돌출이 동행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사적 가치평가를 떠나, 에너지의 응집과 발산의 차원에서만 보자면, 언제나 큰 폭발 뒤에는 인화성 이론과 평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미술의 도래에 반드시 새로운 평론과 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국전 체제를 거부하고 나선 소위 ‘박서보 사단’의 유사-모더니스트 작가들에게는 오광수 등이 있었고, 실체가 불분명했던 유사-포스트모던 작가들에게는 서성록이 있었으며, 소위 ‘분단체제’와 유사-모던 아트의 위세에 반기를 들었던 민중미술에게는 김윤수와 성완경 등이 있었으며, 유사-모더니스트 미술가들과 민중미술가들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1990년대의 새로운 미술에는 ‘전직 좌파’ 이영철과 이영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크고 작은 그룹들의 활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종의 ‘패싸움’ 양상을 띠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양상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작가들의 그룹 활동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평론가와 이론가들의 그룹 활동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미술 계열의 평론가 조직이었던 ‘미술비평연구회’가 해체된 이후 ‘포럼 에이’ 등이 등장했지만 전대에 비견할 만한 그룹 활동은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평론가와 이론가들은, 학회 발표를 제외하면, 개별적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 부유하는 평론가와 이론가 들에겐 영 힘이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없는 이유는 비평적 정신을 지닌 개인으로서 미술의 앞날을 바라보는 비전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전의 결핍에 관해 개인의 자질을 탓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 잘못된 제도에 비평의 초점을 맞춰보자. 자, 오늘의 미술 평론에서 비전을 앗아간 제1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는 역시 ‘학회의 난립’에 있는 것이 아닐까.

19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이 제 힘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있던 무렵,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짝을 이루어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꿈꾸던 ‘낭만적인 시절’ 또한 끝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평론가/이론가 들은 수많은 학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자가-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6년에 미술사연구회(The Association of Art History)와 미술사학연구회(The Korean Society of Art History)가 설립되었고, 1987년에는 한국미술사교육학회가 조직되었다. 1989년에 서양미술사학회(The Korean Association of Western Art History), (http://www.awah.or.kr)가 조직되었고, 1990년에는 한국현대미술사학회(Korean Association for History of Modern Art), (http://www. kahoma.or.kr)가 창립되었다. 1991년에는 한국미술학학회가 등장했고, 1993년에는 한국근대미술사학회(The Institute of Korean Modern Art Studies), (http://www.geundaemisulsa.com)가 등장했다. 1997년에는 현대미술학회(Society for the Science of Contemporary Art), (http://myhome.naver.com/modernarts/front.htm)가 조직되었으며, 가장 최근인 2003년에는 한국미술이론학회(The Korean Society of Art Theories)가 창립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내실 있는 운영을 지속해온 학회도 없지 않으나, 적잖은경우 계보와 학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학회의 난립은 곧 힘없는 연구자들을 ‘이리저리 줄 세우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평론가와 이론가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관련 전공 대학원생들은 봄가을마다 열리는 수많은 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느라 바빴다. 그들에겐 작가들의 창작과 전시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젊은 평론가와 이론가, 그리고 대학원생 들은 작품의 생산과 소통의 메커니즘과는 거리가 먼 ‘학술계’의 방만한 조직을 떠받드는 도제적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일부의 학술적 평론활동을 제외하면, 대개의 평론은 미술잡지들의 기획이나 일부 전시기관들의 의뢰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강의와 학회 출석에 바쁜 평론가들은 작가와 잡지사 편집부, 혹은 해당 전시기관의 학예실의 ‘낙점’을 받아 글을 쓰는 것이 다반사고, 최악의 경우 작가의 전시와 작업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전시평문을 쓰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평문이 신랄한 경우, 그에 흥분한 작가들이 평문의 게재를 거부하기도 하고, 또 잡지사와 전시기관이 작가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평문이 사장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제 전시비평은 거의 작가의 홍보활동에 포섭되고 만 것일까? 평론가는 작가와 미술관, 그리고 상업화랑 아래에 복무하는 서비스 계급으로 몰락한 것일까? 일찍이 이러한 저널리즘 비평의 무기력함을 개탄한 로절린드 크로스(Rosalind Krauss)는 「옥토버」지를 통해 “미술을 사후 승인함으로써 ‘아트 딜러들의 배나 불리는 비평’을 넘어서는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술을 이끌고 변화시키는 비평”을 추구했고, 오늘날 그 결과는 정격적인 미술사 연구와는 대별되는 ‘철학적 비평’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현재 한국의 평론계에 결여된 것은 로절린드 크로스나 데이브 히키(Dave Hickey)류의 철학적(혹은 문학적) 비평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국 미술계엔 평론가와 이론가, 미술사학자가 넘쳐나지만 기이하게도 학회지를 제외하면 평론 저널이 하나도 없다. 물론 ‘철학적 비평’만 아쉬운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서른 곳 이상의 전시를 둘러보는 제리 살츠(Jerry Saltz)와 그의 성실하고 힘 있는 칼럼과 같은, 소위 ‘발로 뛰는’ 평론가와 전문적인 미술 칼럼의 부재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2. 미술잡지를 통한 평론의 전개

평론계의 부진 덕분에 미술잡지들의 기획은 2004년의 평론활동을 주도하다시피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대안미술공간에 대한 특집들이었다.

「월간미술」 2월호는 ‘미술공장으로서의 대안공간’이라는 특집을 통해 대안미술공간의 지난 5년을 회고하고 평가했는데, 이 특집은 각 대안미술공간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들이 드러나 더욱 흥미로운 기획이 되었다. 백지숙(당시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은 기고문 <동시대 한국 대안공간의 좌표>에서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을 표방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문화적 권력의 브랜드로 너무 쉽게 독해되는 상황에서 초창기 대안공간들은 자기 정체를 밝히라는 유, 무언의 압박과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또한 뒤이어 생겨난 여러 공간은 단지 기금을 쉽게 ‘따먹기’ 위해서 대안공간의 외피를 빌려왔다는 누명을 벗기 위해 당분간 적지 않은 소모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세간의 비판에 시달려온 포럼 에이/대안공간 풀의 창립 멤버로서의 정신적 피로감을 드러냈고, 결어에서는 “대안이라는 용어 자체는 어떤 실체를 기준으로 한 본질주의적인 정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맥락과 동시대적 관계에 의거하여 계속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대안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거머쥘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용어의 한계이자 가능성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럼 에이/대안공간 풀이 명백한 ‘민중미술의 적통’ 노릇을 해온 것을 돌이켜 보자면, 그리고 대안공간 풀이 적잖은 지원비를 받고 있음에도 너무나 자주 대관전을 열어왔다는 점을 상기해보자면, 그의 탄식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분명, ‘대안공간’이란 내일의 권력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인큐베이터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놓더라도 ‘대안공간’은 권력적 위계 속에서 독해된다. 그것은 ‘대안’이라는 두 글자를 붙인 모든 것들의 운명이다. 따라서 특집에 등장한 독립 큐레이터 안미희의 글-<과거의 비주류가 현재의 주류로>는 권력을 쟁취하는 기반으로 기능한 미국의 대안공간들의 사례를 다뤄 백지숙의 글과 대조를 이뤘다.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의 글-<신진작가? 큐레이터의 플랫폼 기능>은 유럽의 대안공간의 다양한 운영실태를 언급했고, 대안공간 루프를 운영 중인 서진석의 글-<범아시아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신 미술운동>은 시카고 유학 동문들의 거점으로 시작된 대안공간 루프의 최신 모토인 ‘범아시아 네트워크’를 홍보했다. 반면 「미술세계」 7월호는 특집 ‘대안 필요한 대안공간’을 통해 보다 신랄한 비평 기능을 수행했는데, 이는 마치 「월간미술」 2월호의 특집에 대한 화답처럼 보였다. 대안공간에 대한 다면적인 설문조사의 결과도 흥미로웠지만, 대안공간 풀이 처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 김영진 기자의 글-<대안공간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또한 글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흥미로웠다.

대안공간을 둘러싼 논쟁에 이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월간미술」 9월호의 특집 ‘집중조명, 박이소의 삶과 예술’이었다. 일단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면을 통해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허나 특집 지면 가운데 어디에도 고인의 활동 연보는 보이지 않았다. 작가를 추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연보 작성을 망각한 것이다. 평론가 이영철의 글 <한국 현대미술계에 던지고 간 그 무엇>이 박이소의 작업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것이 회고의 기초인 ‘연보의 작성’을 대신할 수는 없었으며, 박이소를 다소 신화화하는 경향마저 보여주었다. 반면 정헌이의 글 <호모 아이덴트로푸스의 여행>은 진솔한 증언에 가까운 회고담이어서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특집은 이외에도 동료 작가 안규철과 민영순, 후배 작가 함양아, 큐레이터 김선정 등의 회고를 담았고, 고인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다.

대형 국제행사들이 몸싸움을 벌인 한 해였지만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서 나름의 주목을 받은 전시들도 평단의 반응을 이끌었다. 우선 연초에는 삼성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2003>(2003.12.19~2004.2.29, 호암갤러리)에 대한 리뷰가 주목받았다. 쌈지스페이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거친 작가가 다수 포함된 이 전시는 「월간미술」 1월호에서 쌈지스페이스의 김홍희 관장의 글 <복합적 스펙트럼의 앤솔러지형 전시>를 통해 호의적으로 리뷰되었다. 반면 「아트인컬처」 2월호에 게재된 미술평론가 심상용의 글 <신예 발굴 신드롬과 ‘태도 지상주의’>는 같은 전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담고 있었다. 다소 두서없이 젊은 세대에 대한 불쾌감과 김홍희의 리뷰에 대한 반감을 뒤섞은 이 리뷰는 도리어 과거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이 누렸던 ‘신예 등용문’으로서의 힘과 권위가 이제는 삼성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전의 차지가 되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이에 못지않게 비평적 관심을 끈 것이 이영철이 기획한 <당신은 나의 태양전>(10.15~12.5, 토탈미술관)이었다. 이 문제적인 한국현대미술 회고전은 「월간미술」 12월호에 게재된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이정우의 글 <전후 한국미술은 어떻게 동시대성을 획득했는가?>를 통해 리뷰되었고, 「아트 인 컬처」 11월호의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미술잡지들은 연재물을 통해 평론에 기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견 작가들의 작가론을 연재하는 「월간미술」의 ‘3545 아티스트’ 코너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의 <사진작가 오형근-반영과 애매함의 결합>(5월호), 미술 평론가 강수미의 <홍성민-사실과 픽션의 불순한 현실>, 이정우의 <설치작가 김홍석ㆍ김소라-사이비 발명가의 사회적 네트워크 느와르> 등이 실렸다. 「아트인컬처」는 「월간미술」에 비해 연재기사의 기획력에서 크게 뒤지지만, 좋은 특집기사들이 없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은 ‘글로벌 시대의 큐레이터들’이라는 특집에 실린 미술평론가 정도련의 글 <상실의 시대는 계속될 것인가?-정신적 위기에 처한 미국의 큐레이팅>이었다. 그는 작가와 비평가들을 가로지르는 뜨거운 화두가 실종된 작금의 현실을 문제 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분석했다.

이외에도 「월간미술」의 <스페셜 리포트 1.-국제 아트페어의 허와 실> <스페셜 피쳐-한국 미술대학의 현황> <특집 : 유쾌한 아트로 변신한 일상의 오브제> 등도 미술인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지은, 김승호, 신지영, 김윤경, 안인기, 정용도, 김백균의 약식 논문을 모은 「아트인컬처」의 특집 ‘젊은 이론가 7인의 미술 읽기’ 또한 큰 관심을 모았다.



3. 미술이론과 미술사 연구의 학회발표 논문들

학회 가운데는 서양미술사학회(회장: 윤난지(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서양미술사학회의 제35회 춘계학술발표회(3.27, 영남대학교 인문관 강당)에서는 조수정(고려대학교 강사)의 「카파도키아 지역 비잔틴 교회의 성녀상 연구」, 송미숙(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드가의 제스추어」, 정영목(서울대학교 교수)의 「피카소와 한국전쟁: 전쟁과 평화를 중심으로」가 발표되었다. 제9회 심포지엄(이화여자대학교 SK 텔레콤관 컨벤션 홀, 4월 24일)에서는 조은정(서울대학교 강사)의 「‘이상도시(Ideal City)’: 우르비노 궁전에 재현된 15세기 이탈리아 전제군주의 꿈」, 전경희(이화여자대학교 강사)의 「신인상주의 풍경화에 나타난 유토피아적 공간」, 김영나(서울대학교 교수)의 「유토피아의 신기루: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사회주의 도시와 모뉴먼트」, 전영백(홍익대학교)의 「영국의 도시 공간과 현대 미술: 2차대전 이후의 런던」, 이지은(명지대학교 교수)의 「사이버 공간의 정치학: 미술, 권력, 그리고 젠더」 등의 발표가 있었다. 제36회 추계학술발표회(홍익대학교 정보통신센터 국제회의실, 9월 11일)에서는 이화진(이화여자대학교 석사)의 「C. D.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에 나타난 공간 구성 연구」, 윤선애(프랑크푸르트 대학 박사과정 수료)의 「칼 필립 포어: 역사화가로서의 예술사적 평가」, 강태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미술사의 추억」, 김승호(홍익대학교 강사)의 「인간과 자연: 안젤름 키퍼의 작품을 중심으로」 등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사분과가 주관한 제3차 분과학술심포지엄-‘현대 미술과 잔혹성’(10.16, 서울대학교 83동)에서는 이영준(계원조형예술대학교 교수)의 「잔혹성과 차이-이라크 전쟁 사진의 미장센」, 김수현(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의 「도플갱어(doppleganger) 이미지의 자기 증식성」 등의 발표가 있었다.

상반기에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 후보에 선정된 현대미술사학회(회장: 김정희(서울대학교 교수)도 예년보다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제28회 춘계학술발표회(5.22,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신관)에서는 박미연(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연구원)의 「게리 힐(Gary Hill)의 비디오아트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조주연(서울대학교 강사)의 「형식주의와 그린버그」 등의 발표가 있었고, 제29회 추계학술발표회(계원조형예술대학교 본관, 9월 18일)에서는 이은이(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의 「앤디 워홀(Andy Warhol) 회화의 표면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1960년대 <죽음과 재난> 중심으로」, 양은희(경기대학교 강사)의 「온 카와라의 유목민적 방랑과 미국 개념미술의 형성과 와해, 1964~1969」 등이 발표되었다. 제5회 학술심포지엄-‘공공 포럼으로서의 미술’(10.2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는 양현미(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원)의 「공공미술의 제도적 기반; ‘미술을 위한 퍼센트 제도(percent for art scheme)’를 중심으로」, 전용석(작가)의 「도시 담론의 변화와 공공미술의 가능성: 플라잉시티의 청계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김윤경(CUNY Graduate Center 박사과정)의 「공공미술, 또 하나의 접근법: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 사례를 중심으로」가 발표되었다.

한국근대미술사학회(회장: 이중희 계명대학교 교수)도 꾸준한 활동을 벌였다. 춘계학술발표회(4.24, 서울대학교 공예관)에서는 이주원(홍익대학교 석사)의 「동아시아 근대 조소의 전개-인물상을 중심으로」, 김현숙(홍익대학교 석사)의 「동아시아 관전의 지방색-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김철효(삼성미술관 연구원)의 「근대기 한국 ‘자수’ 미술 개념의 변천」, 박계리(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의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이충무공 동상」이 발표되었다. 추계학술대회(10.8, 대구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는 최열(가나아트 연구실장)의 「한국 근대미술 기점 제론」, 이중희의 「조선 후기 풍속화-근대성의 맹아」, 박동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원)의 「심전 안중식 회화의 근대성과 작품 진위 문제」, 박세훈(국토연구원 연구원)의 「동원된 근대: 일제 시기 경성을 통해 본 식민지 근대성」 등이 발표되었다.

신생 학회인 한국미술이론학회(회장: 정영목 서울대학교 교수)도 새로운 활동을 이어나갔다. 춘계전국학술대회-‘현대미술의 반성과 전망’(6.5,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에서는 박영택(경기대학교 교수)의 「회화의 위기, 회화의 대안-동시대 회화 관련 기획전을 중심으로」, 최태만(국민대학교 교수)의 「과연 비엔날레는 세계화의 전도사인가?」, 심상용(동덕여자대학교 교수)의 「국내 서양미술사, 서양미술비평 연구의 문제들에 관한 연구」, 김은영(홍익대학교 겸임교수)의 「미술관의 해석과 소통의 모색」, 안인기(서울대학교 강사)의 「미술 저널리즘과 비판 의무」가 발표되었고, 추계학술발표회(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10월 16일)에서는 조은정(서울대학교 강사)의 「미술가와 역사」, 이지은(명지대학교 교수)의 「라우셴버그와 게임하기: Playing Rebus」, 장동광(독립 큐레이터)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복제’의 개념과 전시규범의 문제-<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중심으로 본 공립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고찰」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학회는 서울대조형연구소, 광주비엔날레재단,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동서양미술문화비교국제심포지엄-시각예술에서의 동양성’을 열었다. 다소 방만한 기획이었음에도 특기할 만한 논문들이 적지 않았다. 김정희(서울대학교 교수)의 「한국현대미술 속의 ‘한국성’ 형성요인의 다면성」, 우훙(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의 「‘수묵’의 재적용: 현대중국미술의 물질성에 대하여」, 정형민(서울대학교 교수)의 「한국미술에서의 동양성 개념의 출현과 변형」, 그리고 요시미 순야(동경대학교 교수)의 「욕망과 폭력으로서의 ‘미국’: 전후 냉전시대 일본과 아시아의 미국화」는 완성도 높은 연구로서의 가치를 넘어, 앞으로 지속적으로 학술적으로 다뤄질 가치가 있는 주요한 논쟁 지점들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러 학회 가운데 단연 활발한 모습을 보인 서양미술사학회의 경우, 예년에 비해 현대시기를 다룬 논문의 수가 늘었고, 연구방식 면에서도 상당히 다채로워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다른 학회와 성격이 중복되는 바가 없지 않아, 앞으로 분과별 활동의 강화를 통한 차별화의 시도가 필요해 보였다. 한편 현대미술사학회는 김정희 신임회장의 리더십 아래 한층 강화된 역량을 보였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학회의 특성상, 앞으로 국내외의 현대미술계에 대한 영향력의 차원에서 의미 있는 진일보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들과 학술계 사이의 인터페이싱에 대한 고민은 한국미술이론학회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창작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독해와 개입을 차별점으로 들고 나선 학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미술이론학회가 선보인 발표들은 기존 학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점은 수년 내에 풀어야 할 큰 과제이지만,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 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딜레마에 봉착한 것은 근대미술사학회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근대미술은 가장 중요한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그 열기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제시할 때가 아닐까 한다. 2004년 한 해 동안의 학회활동들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면,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다. 예전과 달리 현대미술을 다룬 논문의 수가 늘고 있음에도 한국의 현대미술이나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현대미술을 다룬 논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학술계가 이러한 편향에 사로잡힌 가운데, 이미 아시아 현대미술에서까지 연구의 주도권은 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onroe), 줄리아 앤드류스(Julia Andrews), 존 클락(John Clark)과 같은 서구의 연구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편향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4. 대형 행사를 중심으로 한 비평의 흐름

2004년은 한국의 주요 비엔날레인 「제2회 부산비엔날레」(5.22~10.31, 부산시립미술관), 「2004 제5회 광주비엔날레」(9.10~11.13, 중외공원 문화예술벨트/ 광주지하철/5.18 자유공원), 그리고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12.15~2005.2.20, 서울시립미술관)가 한꺼번에 열리고, 또 유명한 미술관 디렉터들과 미술가들, 그리고 큐레이터들을 망라한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10.2~8, ICOM, LEEUM 외)가 열린 해였기 때문에, 이들 대형 행사를 중심으로 많은 평론활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 국제적 행사들은 비평적 쟁점들을 형성하는 데에 실패하거나, 아니면 비평적 쟁점을 회피함으로써 비판의 한가운데에 처하기는 하되 논쟁의 중심에 서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연출했다.

‘틈(隙, Chasm)’을 주제로 내세운 「부산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최태만)가 마련한 학술행사는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조형예술대학원장인 행크 슬라거(Henk Slager)의 주도와 데 아펠에서 수학한 신예 큐레이터 최빛나와 작가 양혜규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전례 없이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진행형의 심포지엄’을 제목으로 내건 부산의 학술 프로그램-「학술 프로그램: 현실에 대한 새로운 비평을 향해」(8.10~19, 큐레토리얼 워크숍/8.20, 심포지엄-패널토론1/8.21, 심포지엄-패널토론2)(http://www.busanbiennale.org/theory)는, 후 한루(Hou Hanru), 하세가와 유코(Yuko Hasegawa), 우테 메타 바우어(Uta Meta Bauer) 등 무게감 있는 큐레이터들이 참여했음에도, 개방적인 분위기의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비권위적 성격은 광주가 보여준 예의 ‘학술적’ 분위기와는 아주 대조되는 것이었고, 부산비엔날레가 2003년에 마련했던 「2004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국제미술학세미나」(2003.4.28~30, 부산광역시청 12층 국제대회의실)의 형식화된 탈식민주의의 성격과도 아주 뚜렷이 대별되는 것이었다. 「2004 …… 국제미술학세미나」가 낡은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통해 1990년대의 ‘정치적 올바름’을 반복하는 데에 그쳤다면, 「학술 프로그램……」은 유효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2004 …… 국제미술학세미나」에 초대된 인도의 독립 큐레이터인 란지트 호스코테(Ranjit Hoskote)의 발표-<주권과 돈키호테적 성격: 유토피아 저편에서의 탈식민성 되찾기>는 진정성을 상실한 탈식민주의연구가 도달한 어떤 문제적 지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학술 프로그램……」에 초대된 노르웨이 오슬로의 현대미술진흥센터의 디렉터인 우테 메타 바우어의 ‘공동체 기반 미술’에 대한 발표나, 칼 아츠 갤러리의 디렉터인 주은지의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분명히 보다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분명한 ‘당대적 비평’이었다.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A Grain of Dust, A Drop of Water)’을 주제로 삼은 「광주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이용우)는 전시에서도 주제보다는 ‘참여관객(The Viewer Participants)’이라는 기이한 개념의 실현에 주력하더니, 응당 마련되었어야 할 학술행사 또한 ‘참여관객 토론회’라는 기묘한 행사로 대체해버렸다. 필경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2003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제기한 주제 ‘꿈과 갈등-관객의 독재’를 염두에 두었을 이 주제는 이용우 총감독의 발표 「관객의 주체적 문화생산참여」에서부터 일종의 ‘문화 사기’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허나, ‘관객이 주체적으로 문화생산에 참여한다’는 모순된 언설은 ‘참여 정부’에 아부하기로 작정한 「광주비엔날레」가 더 많은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내는 데엔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어쩌면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알쏭달쏭한 주제는 그러한 ‘문화 사기’를 은폐하는 ‘최소한의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주제로 내건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윤진섭)는 전시를 얌전하게 만든 것처럼,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국제심포지엄」 또한 얌전하게 치렀다. 미디어 아트 평론가인 필립 코도네(Philippe Codognet)와 총감독인 윤진섭의 발표에 이어 도쿄에 위치한 미디어아트센터인 ICC(Inter Communication Center)의 객원 큐레이터-마수야마 히로시(Masuyama Hiroshi)와 작가 료타 쿠와쿠보(Ryota Kuwakubo)의 발표가 있었지만, 국제 심포지엄이라기보다는 워크숍에서 볼 수 있는 ‘최신 미디어 아트의 경향’의 프리젠테이션이나, ‘작가와의 대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즉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책임자들은 야심 없는 안전 운영보다는 야심 찬 실패를 추구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몫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4년 한 해의 모든 일정을 주도하다시피 한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는 기대와 달리 하등의 비평적 흐름을 만들지 못했고, 폐막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한국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적잖은 예산을 들여 소중한 행사를 개최하면서도 의미 있는 논제를 이끌어내고 논의를 주도하는 ‘의제 설정자’ 노릇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 김병모(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 공동위원장과 이건무(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공동위원장, 그리고 김종규(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공동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는 유럽과 미주 국가들이 독점해오던 대회를, ICOM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에서 유치한 쾌거이자, 아시아 회원국들에게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 ‘희망’과 ‘자신감’이 비전의 제시를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이 행사에서 적절한 논점을 찾아내지 못한 국내의 언론들은 일체의 심층취재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의 책임은 1차적으로 행사 책임자들에게 있겠지만, 명예대회장을 맡은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영부인으로서 문화예술의 진작을 주도하고, 언론의 관심을 유도했어야 할 그였지만, 그의 모습에서 문화예술에 힘을 실어주는 비전이나 식견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대다수의 한국민들은 태국의 마하 차크리 시리돈(HRH Princess Maha Chakri Siridorn) 공주가 어너러리 호스트로 초청된 의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하 차크리 시리돈 공주는 태국뿐만 아니라 범아시아의 문화계를 이끌어갈 인물로 주목받는 차세대 지도자이지만, 국내 언론 가운데 어느 곳도 그와 인터뷰하지 않았다. 결국 이 행사는 또 하나의 국제적인 행사를 주최해냈다는 개발도상국형 자긍심을 전면에 드러낸 채 한국의 초라한 문화적 역량을 재확인시켜준 셈이고, 배후에서 행사를 주도하다시피 한 삼성미술관과 삼성문화재단만 실속을 챙긴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들 대형 행사를 둘러싼 논쟁의 주도권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평론가들과 온라인의 네트워커들에게 돌아갔다. 광주비엔날레는 신랄한 비판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예를 들어, 유진상은 「아트인컬처」 10월호에 기고한 <사라져버린 국제적 야심>에서 “…… 4회 전시는 전시의 운영 미숙에도 불구하고 입장의 분명함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아마도 그 반대의 경우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지면에 <제3세계의 지방 도시에서 벌어진 미학적 파산>을 기고한 이정우는 “‘참여관객’이라는 전대미문의 단어는 아무런 의의와 기능을 가지지 못하는 무능한 방관자들을 지칭할 뿐 …… 비로소 문화 협잡꾼으로 전락한 큐레이터의 당대적 위상에 대해서 논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라고 힐난했다. 물론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비판도 적잖았다. 「아트인컬처」 10월호가 마련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는 “우리가 왜 엄청난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틈’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비엔날레를 왜 가는 것일까요? 동시대 최전선에 놓인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부산비엔날레가 주최측의 바람대로 하나의 문화적 축제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지역성이 비엔날레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도 없고요. 문제는 그것이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으로 고착되는 데 있어요. 해외 미술 사례를 살펴보아도, 미술이 지역성을 강조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반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를 둘러싼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직 여성정치문화연구소(사)의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에 대한 반대운동이 약간의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여성정치문화연구소(사)가 주축이 된 ‘여성문화예술제준비위원회’는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계획 철회해야>라는 성명을 통해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를 “귀족들의 돈잔치, 평민들의 빚잔치”라고 규정하고, “서울세계박물관대회 주최측을 ‘man about town(사교계에 드나드는 건달)’이라고 비웃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면서 ‘2004 여성문화예술제’ 기간 중에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개최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고 비아냥거리며 적극적인 보이코트 운동을 결의했지만, 실제적인 실천은 전개되지 않아 그저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5. 인력과 지성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

전술했다시피, 2004년 한 해 동안 잡지 등을 통해 여전히 많은 글이 인쇄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중심이 없이 점멸하는 크고 작은 행사들은 역량을 축적하고 그 힘을 미술계에 행사하기보다는 제 스스로를 위해 일정을 반복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렇게 한국미술평론계의 인력과 지성이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가운데, 불만에 찬 미술인들은 온라인에서 불건전한 비평문화를 쌓아나갔다. 날이 갈수록 역설과 비난으로 점철되어가는 온라인의 미술 관련 게시판들과 미술계와 단절된 채 자가 증식의 길을 걷고 있는 학술계의 모습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없지 않았다. 평론가들의 블로그가 등장한 것이 그것이다. 이정우, 반이정, 강수미 등의 블로그는 저널 비평 활동과 함께 지면에서 드러내지 못한 사유의 편린들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평론문화의 가능성을 엿보였다. 하지만 ‘정신의 온라인 상태’라고 주장되는 블로깅은 평론가들에게 긍정적인 비평의 미디어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 홍보와 사담에 묻혀 본분을 망각하는 역작용을 행하고 있기도 하므로 그 앞날은 두고 볼 일이라 하겠다.

한국의 미술사 연구/이론/평론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인력과 지성의 소모는 심대하다. 이러한 소모전을 극복하기 위해 주요 학회의 수장들은 물론, 각종 국제행사들의 주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의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평론계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당장, 올 한 해 동안 발표된 모든 평론과 논문들의 아카이빙은 누가 어떻게 어디에 할 것인가? 과연 그 많은 논문들은 두루 읽히고,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일까? 역량의 집중을 통한 합리적 시스템의 구축이 아쉽다.(학회의 개편 외에도 독립연구자들의 연구활동지원 프로그램이나, 우수논문시상제도 등을 논의해 볼만하다) 잊지 말자, 한국미술평론계의 인력과 지성은 낡은 제도를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건강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못하는 학회와 평론계엔 새로운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젊은 지성인들의 발길이 끊기면, 남은 것은 황폐한 미래뿐이다.

◈ 筆者 : 이정우 미술ㆍ디자인 평론가